장미꽃 20송이..
^0^ 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됬네요

다시 돌아왔습니다
by 꺼억★_○ | 2004/01/28 13:40 | 트랙백(2) | 덧글(6)
남편의 사랑
서로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게 된 한 쌍의 연인이 있었다. 남자는 아파트 한 채를 미리 사 두었고,

여자는 아파트 규모에 맞을 만한 가구와 가전제품을 점찍어 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하루 앞침에 형편이 어렵게 되었다.

그 충격으로 여자의 아버지는 쓰러져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결혼을 한 달여 앞둔 날,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여자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했다.

"혜원 씨, 사실 아파트는 내 것이 아니에요." 그러자 여자의 눈에서도 눈물이 즈르르 흘러내렸다.

"괜찮아요. 전 이제 그집에 채울 살림살이를 하나도 준비할 수 없는 걸요.

" 그리하여 두 사람은 다칸 전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다. 남자의 월급은 보통 사람들보다 적었지만 여자는 마냥 행복했다.

일년 뒤 여자의 아버지는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사업을 일으켰다. 그러자 여자는 조금씩 자신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크고 좋은 가구들을 얼마든지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남자에게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결혼 전에 남자가 자기를 속였던 사실이 떠올랐고 억울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자는 친정어머니에게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사실은 김 서방이 아무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털어놓아야겠구나

." 남편은 아무것도 해올 형편이 못 되는 신부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차라리 아파트를 팔아 장인의 빚을 갚았고

매달 월급의 일부를 병원비로 썼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여자는 남편의 깊은 사랑에 행복함을 감출 길이 없었다.


~~~~~~~~~~~~~~~~~~~~~~~~~~~~~~~~~~~~~~~~~~~~~~~~~ @>----~~~~~~~~~~~~

^^ 이분과 같은 제 동반자를 찾고 싶습니다.

묵묵히 저도 모르게 힘이 되어줄 그런 동반자를 찾고 싶네요.
by 꺼억★_○ | 2003/10/17 16:54 | 우리가 | 트랙백(2) | 덧글(28)
지하철 사고에 한마음 구조
[조선일보 최승현 기자] 지난 13일 밤 10시쯤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반대방향의 전동차로 갈아타기 위해 선로를 가로지르던 안모(40)씨가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이자 승객들이 일제히 전동차를 밀어 구출을 시도했던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다. 하지만 안씨는 병원으로 호송되던 중 숨졌다. 당시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던 박의신(연세대 신학과4년)씨가 한 인터넷사이트에 올린 생생한 목격담이 화제가 되고 있다.

“2호선 승강장에 들어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열차가 저만치 중간에서 멈추더니 기관사가 급히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고, 몇몇 여자분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왔다. 잠시 후 지하철 문이 열리며 승객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고 많은 여자분들이 격한 감정과 충격을 이기지 못해 ‘사람이 끼었어’라고 전화에 대고 흐느꼈다. 곧 ‘열차를 밀어요!’라는 외침과 함께 사람들이 매달려 열차를 밀기 시작했다.

처음에 꼼짝도 안 하던 열차는 점점 많은 사람들이 달라붙자 조금씩 기우뚱거렸으며, ‘하나, 둘, 셋, 하나, 둘, 셋’ 외침이 반복되며 열차의 요동도 커졌다. 놀라서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열차를 밀던 한 아저씨가 ‘여기 붙어요!’라고 다급하게 소리치자 남자뿐 아니라 여자분들도 동참했다. 잠시 후 상황은 종료됐다….

지하철 역에서 나와 거리를 걷는데 문득,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열차에 매달렸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몸을 던졌던 여자분의 모습도 떠올랐다. 마치 그들이 나를 살려준 은인인 양, 내 가족을 구해준 은인인 양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 당시 무슨 생각이었는지 사진기를 꺼내 급히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그때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여기붙어요!’ 하는 아저씨의 음성이 들렸고 그 소릴 듣는 순간 사진기 내던지고 열차를 밀고 싶었다. 그러나 지켜야 하는 중요한 짐이 있다고, 이미 내가 붙을 자리는 없다고 정당화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조선일보 2003-10-16 03:45:00]



....................................................................

사람은 선천적으로 착한거 같습니다.

사람이 승강장낀지 5분만에 모두 힘을 합쳐 구해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장파열로 그 승객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분의 죽음은 안타깝니만 그래도 이 기사를 읽으면서 정말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걸 느끼게 되네요 ^^

by 꺼억★_○ | 2003/10/16 14:53 | 우리가 | 트랙백(1) | 덧글(18)
하느님의 미소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중 공원에서 있었던 일 -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한 어린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하나님이 살고 있는 곳까지 가려면 먼 여행이 필요하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소년은 초콜릿과 음료수 여섯 병을 배낭에 챙겨 들고 여행길에 나섰다.

네거리를 세 개쯤 지났을 때 소년은 길에서 한 늙은 할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우두커니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소년은 그 할머니 옆에 앉아서 가방을 열었다. 음료수를 꺼내 마시려다 말고 소년은 할머니가 배고파 보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초콜릿을 꺼내 그 할머니에게 주었다.

할머니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들고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할머니의 미소가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소년은 그 미소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할머니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또다시 소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소년은 매우 기뻤다.

그들은 그날 오후를 그렇게 먹고 마시고 미소 지으면서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그들은 그것박에는 다른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소년은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려고 배낭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몇 걸음 걸어가다 말고 소년은 뒤 돌아서서 그 노부인에게로 달려와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후 소년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소년의 어머니가 소년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한 표정을 보고 놀랐다.

어머니가 소년에게 물었다.

"오늘 무엇을 했길래 넌 이렇게 행복해 보이니?"

소년이 대답했다.

"오늘 하나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어요."

엄마가 뭐라고 반응을 보이기 전에 소년이 덧붙였다.

"엄마도 아세요? 하나님은 내가 여지껏 본 적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가졌다구요."

그러는 동안 그 할머니 역시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의 아들이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평화로운 표정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어머니,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행복한 표정이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난 오늘 공원에서 하나님과 함께 초콜릿을 먹었단다."

아들이 뭐라고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녀는 덧붙였다.

"너도 아니?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더구나."

                          - 줄리 A. 만한 -

.......................................................................

자신의 마음속에 하느님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자신한테도 상대방한테도 언제나 존재하시죠.. 다만 느끼지 못할뿐....

참 안타깝습니다. 이제 거울을 보시고 한번 느껴보세요

미소를 지으시면 조금이나마 느끼기 시작할수 있을겁니다. ^^
by 꺼억★_○ | 2003/10/15 12:28 | 우리가 | 트랙백 | 덧글(5)
다시 돌아온 이글루..
다시 돌아왔습니다.
많은 일을 있은후.. 그래도 좋은 글들이 가득한 가득한 이곳으로 돌아왔습닏. ^^
by 꺼억★_○ | 2003/10/15 12:22 | 내가 | 트랙백(4) | 덧글(5)
<어머니의 사랑>
(오늘은 길이 좀 길지만 너무나 감동적이라 올립니다 ^^)


난 지금도 시장길을 지날때면 시장구석진 자리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보곤 한다.
예전에는 이 시장길을 지나는 것이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젠 나에게 이곳을 지날 여유도 없다.
어쩌다 가끔씩 들려보는 이곳 시장터.
난 이곳에서 장사를 하는 한분의 고귀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

"엄마 시장갔다 올테니, 밥 꼭 챙겨먹고 학교가거라"

난 장사를 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잠을 자는척 했다.
이지겨운 가난. 항상 난 이가난을 증오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벗어나고 말리라는 다짐을 굳히곤 했다.
내가 학교가는길 시장 저 귀퉁이에서 나물을 팔고 계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어머니가 나를 발견할까봐 얼른 도망친다.
우리 부모님은 막노동을 하셨다고 한다.
일하는 도중 철근에 깔리신 어머니를 구하시려다 아버지는 사망하고
어머니는 한쪽 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일을 가시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나물을 캐서 팔곤 하셨다.
난 항상 들판에 절뚝거리시며 나가시는 어머니가 싫었고
밤새 다듬으시는 모습도 싫었다. 더더군다나 시장 한귀퉁이에서 쪼그리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 비슷하게 장사를 하는 것도 맘에 들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퉁퉁부은 다리한쪽을 주무르시며 나물을 다듬고 계신다.
나를 보자 어머니는 기쁜 낮으로 3,000원을 주신다.
난 그돈을 보자 화가 치민다.

"난 거지 자식이 아니란 말이야 이런돈 필요없어!"

그리고는 밖으로 나와 버린다. 다음날 아침 난 어머니가 시장간 틈을 타
집에가서 책가방을 들고 학교에 간다. 학교길 약수터에서 간단히 세수를 한다음
물로 배를 채운다.
난 비록 풍요롭게 먹고 입지는 못했지만 공부는 악착같이 했다.
그래서 부잣집 자식놈들보다 공부는 항상 잘했다. 하지만 그자식들에게 사는
미움도 만만치않았다. 그날 4교시가 끝날무렵 아이들이 갑자기 웅성거린다.
복도를 보니 어머니가 절뚝 거리시며 교실로 들어선다.
선생님 드리려고 장사하려고 다듬은 나물을 한봉다리 들고서....
어머니는 내가 어제 들어오지 않자 걱정이 되셔서 학교에 오신거란다.
선생님과의 면담을 끝내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이 한마디씩한다.

"야! 이민석 너네 엄마 병신었냐?"

그놈은 그잘난 부잣집 아들 현우였다.
현우는 어머니의 걸음걸이를 따라한다. 무엇이 우수운지 반 아이들은 웃어댄다.
난 화가 나서 그놈을 정신없이 두들겨 줬다. 그리고서는 교실을 나와 버렸다.
저녁무렵 집에 가니 집앞에 잘차려 입은 여자와 현우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애비 없는 자식은 이래도 되는거야? 못배우고 없는 티 내는거야 뭐야.
자식 교육좀 잘시켜, 어디감히 우리집 귀한자식 얼굴을 이렇게 만들어 놓느냔
말이야. 응. 어머니라는 작자가 병신이니 자식 정신이 온전하겠어?"

어머니는 시종일관 죄송하다는 말뿐이다. 난 그러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다.
집에 들어가도 어머니는 아무말씀 없으시다. 난 어머니에게 한마디한다.

"다시는 학교에 오지마 알았어? 챙피해서 죽는줄 알았다 말이야."
"그래 미안하다 난 민석이가 걱정이 되어서......"
"난 차라리 엄마가 없었으면 좋겠어"

난 해서는 안될말을 해버렸다.
슬픔을 보이시는 어머니를 못본척하며 자는 척 했다.

"난 꼭 성공할꺼야."

밤새 이렇게 외쳤다.
다음날 아침 수업료라며 엄마가 돈을 쥐어 주신다.
얼마나 가지고 계셨는지 너무도 꼬깃하고 지져분한 돈이었다.
학교에 가니 선생님이 부르신다. 적어도 선생님만은 내편이셨다.
어머니께 잘 해드리라는 말로 나를 위로하신다. 선생님께서 나물 맛있게
먹었다고 어머니께 전해 달란다. 난 그러마 했다.
하교 길에 길 모퉁이 배추가게 쓰래기통에서 배추잎들을 주어모으시는
어머니를 본다. 난 모른척 얼른 집에 들어와 버렸다.
그날 저녁 배추국이 밥상에 올라온다.

"이 배추!"

난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께선 아무일도 아니라는듯

"배추가게 아저씨가 팔다 남은거라고 버리기 아까우니 가져가서
민석이 국 끓여 주라고 하더구나"

어머니의 말에 난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로 난 거지자식이 되어버린것만 같았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하는 어머니가 너무도 싫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이 어머니 생신이셨다고 한다.

~~~~~~~~~~~~17년후~~~~~~~~~~~~~~~

난 의사가 되었다. 가정도 꾸리고 병원도 장모님께서 개업해 주셨다.
난 너무도 풍요로운 생활에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돈은 꼬박꼬박 어머니께 보내 드렸지만 찾아가 본적은 없었다.
아니 어머니라는 존재를 잊고 살려고 노력했다는 해석이 옳을지 모르겠다.
그런 어느날.....
퇴근길에 우리집앞에 어느 한노인과 가정부 아주머니가 싸우고 있는걸 봤다.,
다가서니 그노인은 내가 가장 잊고자하는 어머니였다.
전보다 더 야윈얼굴 허름한 옷차림 그리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다리......
어머니는 나를 보자 기뻐하신다.

"민석아 많이 좋아졌구나."

난 어이 없다는듯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난 차갑게 한마디 한다.
뭐가 모자라서 나에게 온단 말인가.... 그동안 생활비로도 모자라단 말인가?
민...석....아....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

"전 민석이가 아니라 최영호입니다."

난 이 한마다를 끝으로 집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정부가 애써 돌려 보낸후 별 노망든 할머니가 다있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후 한달동안 난 악몽에 시달린다. 할수없이 난 다시는 되돌아 가기 싫은
시장이 있는 우리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시장 한귀퉁이에 여전히 나물을 팔며 기침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난 가만히 곁에 가서 지켜본다.
나물을 사려는 한 아주머니가 묻는다.

"할머니는 자식이 없나요?"
"아니여 우리 아들이 서울 큰 병원 의사여. 자꾸 나보고 같이 살자고 하는디
내가 싫다 혔어.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자실 신세를 져.
요즘도 자꾸 올라오라는거 뿌리 치느라고 호났구만. 우리 아들같은 사람
세상에 둘도 없어. 우리 아들이 효자여 효자."

어머니는 자식자랑에 기분이 좋았는지 나물을 많이도 넣어 드린다.
그런 어머니를 뒤고하고 난 예전의 집으로 향한다. 아직도 변한게 없는 우리집
거의 쓰러져 가는데도 용캐 버티고 있었다. 이런곳에서 살았다는게
생각에 없을 정도였다. 난 방틈으로 돈봉투를 넣어놓고는 돌아선다.
1년이 지난후 난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고교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그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 발길은 어머니의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시장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정말로 보이질 않았다.
도착한 곳에는 선생님이 혼자 집을 지키고 계셨다.
나를 알아보신 선생님 아무말씀도 없으시다. 무거운 침묵.......

"민석아 내 옆에와서 잠깐 앉아라."

선생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셨다.
선생님께선 낯익은 보따리를 나에게 주신다.
바로 어머니가 가지고 다니시던 나물보따리셨다.
이보따리라 밤새 다듬은 나물들을 싸서 시장에 팔러 가시곤하셨다.

"풀러 보거라"

선생님의 말씀데로 난 보따리를 풀렀다.

"돈 아님니까."

"그래 돈이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주시는 마지막 선물이다.
그동안 네가 돌아 올까봐서 그리고 혹시나 네가 성공하지 못하면
다른 사업을 할수있도록 모아두신 돈이란다. 너하나 믿고 무슨 미련인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너를 기다렸다. 너에게 잘해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
하셨다.내가 가끔 네 어머니의 말 동무가 되어드렸단다. 그래서 나에게
네 어머니의 유언을 전하도록 부탁하셨다.
그리고 네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도 함께 말이다."

선생님의 얘기들은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선생님의 얘기는 이러했다.
내가 아주 어렸을적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은 퇴근길에 쓰래기통을 뒤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고 한다. 자식이 없던 터라 나를 데리고가서 키웠다고 한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얼마나 기뻣는짐 모른다고 한다.
어린나를 집에 혼자 둘수 없어 항상 나를 공사판에 데리고 다니셨다고 한다.
그런 어느날 무너지는 철근 밑어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가 뛰어 드셨다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도 어머니와 나를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지셨다고 한다.
그 사고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한쪽다리를 잃으셨다고 한다.
그러니까 난 아버지의 목숨과 어머니의 다리로 살아난 운좋은 놈이라고 한다.
혼자가 되신 어머니 다리마져 불편하신 어머니께 주위사람들은 나를
고아원에 보내라고 하셨단다. 하지만 어머니 나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기에 나를 버리시지 않고 키우셨다고 한다.
그후 어머닌 아버지를 잊기위해 이곳으로 옮기셔서 나물을 팔며
나를 키워오신거란다.
내가 대학다닐때 암인걸 아신 어머니는 자신의 몸보다 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병원에도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암 전문의로 명성을 날리는 내가
내 어머니를 암으로 돌아가시게 하다니.....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나를 한번 보고자 물어물어 서울까지 오셨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에게 난 가슴에 못을 박고 말았다.
자신이 낳은 자식도 아닌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이 여기셨던 어머니를 버린
자신을 용서할수갈 없었다.
하지만 나를 조용히 내려보시는 어머니의 사진이 잔잔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이런 자식마져도 어머니는 사랑하시나 보다.
내어머니 사랑하는 내어머니....
그후 난 시간이 날때마다 가끔씩 이곳을 들른다.
혹시나 어머니가 나물을 파시고 계실것 같은 착각에 말이다...

자료출처 http://myhome.shinbiro.com/~sev77/main.htm
by 꺼억★_○ | 2003/10/10 14:25 | 내가 | 트랙백 | 덧글(12)
무제
무제라는 말이 좋습니다.

아무것도 정의내려지지 않은, 아무것도 규정지어지지 않은.

그런 제목이 참 좋습니다.

때로는 그냥 내마음대로 쓰고 싶은데. 모든것에는 이름과

제목이라는 것들이 따라다니죠.

"무제" 이역시도 정의와 규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발악이라고 할수 있겠네요

하지만 무작정 써내려가고, 무작정 표현한다면 그건 난장판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ㅡㅡ; 뭐가 이리 어려운건지.. 왜 그냥 살수는 없는건지...

참으로 어렵습니다.



P.S: 거기에 정신이 없어 이상한 소리들로만 가득쳐워 봅니다 -,.-
by 꺼억★_○ | 2003/10/09 17:15 | 내가 | 트랙백 | 덧글(6)
소중한 친구
너무나도 친한 두 친구가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났고, 줄곧 같은 학교를 다녔던 죽마고우였다. 군대에도 같이 가게 되었다.

그때 월남전이 터졌다. 둘은 같은 부대원이 되어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었다. 숱한 전투를 치르며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러던 중 종전을 얼마 남겨두지않은 상황에 전투에 참여하게 되었다. 치열한 전투였다.

그 와중에 두 친구 중 한 명이 돌격 중 적탄에 가슴을 맞고 한참 격전 중인 한 가운데 지점에서 쓰러졌다.

부상을 입고 헐떡이는 것을 본 다른 친구가 뛰어나가려고 했다. 그때 소대장이 팔을 붙잡았다.

"김일병, 저 애는 살려봤자 전투불능 상태야. 그리고 우리가 진격이나 퇴각할 때도 그는 짐만 될 뿐이야.

게다가 너까지도 위험해! 어줍잖은 감상은 집어치워."그러나 그 친구는 신음하는 친구를 내버려둘 순 없었다. 소대장의 팔을

뿌리치고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의 정점을 향해 뛰어나갔다. 얼마 후 그는 피범벅이 된 친구를 등에 업고 참호 안으로 돌아왔다.

등에 업혔던 친구는 이미 죽어있었고, 업고 온 친구 역시 여러 곳에 총탄을 맞아 숨을 헐떡이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화가 난 소대장이 소리쳤다."내가 뭐랬어? 네 친구는 죽었어. 너 역시 큰 부상을 입지 않았나.

우리 소대의 전투력 손실도 마찬가지야! 그런 무모한 행동이 도대체 무슨 이득을 줄 수 있어?"

소대장의 다그침에 친구는 희미한 미소로 대신했다. 그리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저는 큰 이득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말하더군요. '네가 올 줄 알았어'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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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믿음.. 그리고 그것에 보답할수 있는 나의 또다른 믿음..

이 두 믿음 앞에 불가능이란 없을거 같네요...

무엇이든 서로간의 믿음과 희생으로 함께 해나간다면

언제든지 성공할수 있을거 같아요.. ^^
by 꺼억★_○ | 2003/10/09 14:14 | 우리가 | 트랙백 | 덧글(8)
사랑의 조건반사~!! ^^
사랑의 조건반사.. 누구나 어릴적 한번쯤은 경험해봄직한 일이죠 ^^

전 아직까지 이러고 있답니다.
by 꺼억★_○ | 2003/10/08 16:35 | 내가 | 트랙백(2) | 덧글(8)
상대방을 바라볼때..
-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중 입맞춤 -

의사인 나는 이제 막 수술에서 회복된 어떤 여성 환자의 침상옆에 서 있었다. 그녀는 수술 후에도 옆 얼굴이 마비되어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얼핏 보면 어릿관대 같은 모습이었다. 입의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한 가닥이 절단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는 평생 동안 그런 얼굴로 살아야만 했다. 외과의사가 최선을 다해 그녀의 얼굴을 성형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뺨에서 암세포가 번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수술 도중에 어쩔 수 없이 신경 한 가닥을 절단해야만 했다.

그녀의 젊은 남편도 그녀를 내려다보며 환자 옆에 서 있었다. 저녁 불빛 속에서 그들은 마치 내 존재를 잊은 양 열심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비뚤어진 얼굴을 해 갖고서도 이토록 부드럽고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이윽고 그녀가 내게 물었다.

"제 입은 평생 동안 이런 모습으로 있어야 하나요?"

내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신경이 끊어졌기 때문이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때 그녀의 젊은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그 모습이 좋은데 뭘. 아주 귀여워 보인다구."

그 순간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았다. 그는 신과 같은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차마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서 나는 바닥에 시선을 떨구었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 남자는 아내에게 입을 맞추기 위해 몸을 숙였다. 그리고 그는 비뚤어진 아내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추기 위해 잔뜩 비뚤어진 입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아직도 입맞춤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 리차드 셀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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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바라볼때 너무 자기 기준에 의해서 바라보는것은 아닌지..

진정 상대방을 바라본다는 것은 그 모든것을 떳떳이 바라볼수 있는게 아닐까요?

사랑한다면 모든걸 사랑해야겠죠..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누구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by 꺼억★_○ | 2003/10/08 14:07 | 트랙백 | 덧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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